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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하다 보니 기록

스팟 워크 (초고령사회, 유연근무, 시니어일자리)

livingnote-kr 2026. 8. 6. 01:28

목차


    예전에 TV에서 일본의 시니어들이 스마트폰으로 몇 시간짜리 일자리를 골라 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력서를 여러 장 준비하거나 긴 면접을 거치는 과정도 없었습니다. 앱에 올라온 일자리 가운데 자신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를 선택하고,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 일을 마치는 방식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그것을 일본의 고령화 문제를 보여주는 조금 먼 이야기로만 봤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일을 해야 한다는 현실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하루에 몇 시간씩 일해서 생활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제가 한의원에 채용되면서 그 방송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제가 새로 일하게 된 곳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는 일반적인 주 5일 근무가 아닙니다. 평일 2일 주말 2일 / 평일 3일 주말 1일로 근무하는 방식입니다.

    하루 몇 시간씩 일회성으로 근무하는 일본의 스팟 워크와 똑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고정된 평일 근무에서 벗어나 생활에 맞게 일정을 구성한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었습니다.

    처음 근무 조건을 들었을 때는 낯설었습니다. 평일과 주말이 섞여 있으면 생활이 더 불규칙해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출퇴근 시간과 전체 근무시간, 아이들 일정, 평일에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따져보니 꼭 불리한 조건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때 TV 속 시니어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예전에는 남의 나라 노후 이야기로 봤던 장면이 앞으로 제가 만나게 될 일자리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고령사회,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일본 총무성 통계국에 따르면 2024년 10월 기준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는 약 3,624만 명입니다.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9.3%로, 세 명 중 한 명에 가까운 사람이 65세 이상입니다.

    일반적으로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인 사회를 초고령사회라고 부릅니다. 일본은 이 기준을 이미 오래전에 넘어섰습니다. 생산연령인구가 줄면서 음식점과 숙박업, 소매업, 물류업처럼 일정 시간에 사람이 꼭 필요한 현장에서는 인력 부족이 중요한 문제가 됐습니다.

    이러한 노동환경에서 빠르게 성장한 근무 방식 중 하나가 스팟 워크입니다.

    스팟 워크는 사업체가 사람이 필요한 시간에 맞춰 몇 시간 또는 하루 단위로 근로자를 모집하고, 근로자는 앱을 통해 원하는 일자리를 선택하는 초단기 근무 형태입니다. 일본에서는 틈새 시간을 의미하는 ‘스키마’와 아르바이트를 결합해 ‘스키마바이트’라고도 부릅니다.

    예를 들어 음식점은 점심시간에 몰리는 설거지와 홀 정리를 위해 세 시간만 일할 사람을 구할 수 있습니다. 물류센터는 주문이 집중되는 시간에 분류 인원을 보충할 수 있고, 마트는 상품 진열이나 포장이 필요한 시간만 근로자를 모집할 수 있습니다.

    근로자는 앱에서 근무 날짜와 시간, 거리, 업무 내용과 임금을 확인한 뒤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에 지원합니다.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면 긴 채용 절차 없이 비교적 빠르게 일자리와 연결됩니다.

    다만 스팟 워크라고 해서 모든 일자리가 무조건 이력서와 면접 없이 선착순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플랫폼이나 사업장에 따라 이전 근무 이력, 이용자 평가, 자격증과 업무 경험을 확인하기도 합니다. TV에 나온 몇 장면을 모든 스팟 워크의 공통 규칙처럼 받아들이지는 않아야 합니다.

    방송을 볼 때와 지금의 나의 생각은?

    처음 방송을 봤을 때는 스팟 워크가 안정적인 직장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일처럼 보였습니다. 근무시간이 짧고 다음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으니 자유롭다기보다 불안정하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지금은 그때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고정된 직장을 구하기 전 잠깐 이용하는 일자리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육아나 가족 간병 사이에 소득을 얻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은퇴한 사람에게는 하루 종일 근무하지 않고도 자신의 체력에 맞춰 일할 수 있는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유연한 일자리가 반드시 좋은 일자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하루 8시간, 주 5일을 일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짧은 근무시간은 불안정의 표시가 아니라 다시 일할 수 있게 해주는 조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번 한의원 채용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예전에는 평일 주 5일 근무를 가장 안정적인 형태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 생활에서는 근무 형태만큼 출퇴근 거리, 전체 근무시간, 급여, 체력 소모와 가족 일정이 중요합니다.

    겉으로는 안정적으로 보이는 주 5일 일자리라도 퇴근 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친다면 오래 유지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평일과 주말 근무가 섞여 있어도 일정이 미리 정해지고 생활을 조절할 수 있다면 제게는 더 현실적인 일자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유연근무를 직접 선택하고 달라진 생각

    이번 채용 조건을 처음 들었을 때 가장 먼저 계산한 것은 실제 생활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챙기는 시간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출퇴근을 감당할 수 있는지, 평일에 쉬는 대신 주말 근무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생각했습니다.

    평일 휴무가 생기면 은행이나 병원처럼 주말에 이용하기 어려운 업무를 처리하기 편합니다. 반면 가족과 쉬는 날이 달라질 수 있고 주말 일정에 제약이 생깁니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근무 조건이 제게도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며,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유연근무를 단순히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정하는 제도라고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실제 생활에서는 급여, 휴일, 출퇴근 거리, 돌봄 시간과 체력까지 함께 맞아야 비로소 유연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스팟 워크와 제가 선택한 한의원 근무는 계약 기간과 근무 구조가 다릅니다. 한의원 근무를 스팟 워크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일을 생활 한가운데 고정해 놓는 대신, 현재의 생활 조건에 맞춰 근무일을 다시 배치한다는 점에서는 연결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이번에 새 근무 형태를 받아들였다고 해서 앞으로도 무조건 주말 근무를 선호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지금의 가족 상황과 체력, 급여 조건을 함께 검토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유연근무의 장점은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유연근무가 좋다고 말하면서 또다시 한 가지 근무 형태를 정답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류센터에서 나이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저도 이전에 물류센터에서 잠깐 일해본 적이 있습니다. 들어가기 전에는 무거운 물건을 빠르게 옮겨야 하니 젊은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 현장에 가보니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연령대는 예상보다 훨씬 다양했습니다.

    40대와 50대뿐 아니라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분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고 계셨습니다. 물류센터의 일이 모두 같은 강도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상하차처럼 체력 소모가 큰 공정이 있는 반면, 상품을 확인하고 분류하거나 물건이 막히지 않도록 작업 흐름을 살피는 일도 있었습니다.

    오래 일한 분들은 무조건 빠르게 움직이기보다 물건이 몰리는 순간과 작업 동선을 알고 움직였습니다. 속도만큼 실수를 줄이고 일정한 흐름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해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이가 많으면 현장에서 무조건 불리할 것이라는 생각이 단순한 편견일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물론 개인의 체력과 건강 상태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같은 나이라도 감당할 수 있는 업무와 부담을 느끼는 정도는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나이만 보고 일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 강도와 작업 환경을 개인의 능력에 맞추는 일입니다.

    일본의 스팟 워크 플랫폼 타이미와 관련해 공개된 조사에서는 2025년 4월 기준 60세 이상 등록자가 약 30만 8천 명으로 집계됐습니다. 65세 이상 등록자는 약 11만 명이었습니다. 전년 같은 달과 비교하면 각각 약 1.9배와 2배로 늘어난 수치입니다.

    이 조사에서 시니어 이용자들이 단기 일자리를 선택한 주요 이유로는 집 근처에서 일하기 쉽다는 점, 빈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고를 수 있다는 점 등이 제시됐습니다.

    처음에는 시니어가 앱을 이용해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부터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은행 업무와 쇼핑, 병원 예약까지 하는 사람이 늘어난 상황을 생각하면 일자리만 예외일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앱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위한 안내와 교육은 함께 필요합니다.

    스팟 워크의 자유와 불안정 사이

    스팟 워크는 자신이 일하고 싶은 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됩니다. 사업장도 바쁜 시간에만 사람을 구할 수 있으니 인력 운영이 편리해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만 보면 중요한 문제가 가려질 수 있습니다.

    몇 시간만 일하더라도 작업 중 사고는 발생할 수 있습니다. 처음 가는 사업장에 투입되면 업무 설명과 안전교육이 충분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공고에서 본 업무와 실제 업무가 다르거나, 사업장 사정으로 근무가 갑자기 취소되는 문제도 생길 수 있습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스팟 워크를 이용할 때 누구와 근로계약을 체결하는지, 근로조건통지서에 임금과 근로시간이 어떻게 적혀 있는지 확인하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중개 앱이 있다고 해서 앱 운영회사가 항상 사용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근로계약을 맺은 사업주에게 임금 지급과 노동관계법 준수 의무가 발생하므로 계약 상대와 근로조건을 확인해야 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스팟 워크를 바라볼 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을 고르는 과정은 간단해졌지만 근로자의 권리까지 가벼워진 것은 아닙니다. 몇 시간만 일해도 다치면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하고, 정해진 일을 했다면 약속한 임금을 받아야 합니다. 부담 없이 일하는 방식이 보호받지 못하는 방식과 같은 뜻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유연함은 근로자가 필요할 때만 강조돼서는 안 됩니다. 근로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과 함께 정확한 업무 안내, 안전한 작업환경, 정당한 임금이 보장돼야 합니다.

    한국의 시니어 일자리

    일본의 스팟 워크를 보면서 처음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머지않아 비슷한 모습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제 경험을 떠올려보니 한국에도 이미 시니어들이 짧은 시간씩 일하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다만 일본처럼 앱에서 하루 단위의 일자리를 고르는 방식이 아니라, 공공사업을 통해 일정한 기관에서 몇 달 동안 근무하는 형태였습니다.

    제가 2022년 어린이집에서 보건교사로 근무할 때도 오전에 몇 시간씩 출근하시는 시니어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어린이집 안을 청소하거나 아이들의 간식을 준비하는 일을 도와주셨습니다. 담임교사처럼 아이들을 직접 담당하지는 않았지만, 오전에 일이 몰리는 시간에 꼭 필요한 부분을 맡아주셨습니다.

    하루 종일 근무하는 방식은 아니었고, 한 달에 70만 원 정도를 받으신 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너무 더운 여름인 8월과 너무 추운 겨울인 12월에는 활동을 쉬셨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어린이집에 일손을 보태주시는 분들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일본의 스팟 워크를 보고 나서야 그분들의 근무도 고령자가 체력에 맞춰 짧게 일할 수 있도록 만든 한국형 시니어 일자리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방식이 더 좋다고 단순하게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공공사업형 일자리는 일정한 기간과 장소에서 일할 수 있지만 모집 인원과 예산의 제한을 받습니다. 스팟 워크는 일할 날짜를 비교적 자유롭게 고를 수 있지만 다음 일자리가 계속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제가 어린이집에서 만난 시니어 근로자들을 떠올려보면 짧은 근무라고 해서 역할까지 가벼웠던 것은 아닙니다.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맞이하고 수업을 준비하는 시간에 청소와 간식 준비를 맡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실제 운영에 도움이 됐습니다. 무엇보다 그분들은 도움이 필요한 노인으로 어린이집에 오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맡은 일을 하러 출근한 근로자였습니다.

     

    일본의 스팟워크와 한국의 노인역량활용사업을 함께 보면, 앞으로의 일은 하나의 직장에서 하루 종일 근무하는 방식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미래의 나는 어떻게 일하게 될까

    예전에는 직장을 고를 때 급여와 근무시간을 먼저 봤습니다. 지금은 출퇴근 거리, 체력, 가족 일정과 오래 버틸 수 있는지를 함께 보게 됩니다. 나이가 더 들면 건강 상태와 업무 강도의 비중이 지금보다 커질 것입니다.

    이번 한의원 취업은 제게 일하는 방식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줬습니다. 평일과 주말을 조합하는 지금의 근무가 평생 계속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일자리를 볼 때 주 5일 근무인지 확인하는 데서 끝내지 않고, 제 생활 전체를 유지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게 될 것 같습니다.

    TV에서 일본의 스팟 워크를 처음 봤을 때는 ‘나이가 들어도 계속 일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지금은 질문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일을 해야 하는가 보다, 나이가 들어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할 선택지가 있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에게 이번 한의원 취업은 단순히 새로운 직장을 얻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싶은지, 생활을 지키면서 얼마나 오래 일할 수 있을지를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계기가 됐습니다.

     

    앞으로의 저는 지금보다 짧게 일할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일을 배우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때 중요한 것은 나이 때문에 선택지가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동시에 일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몸에 맞지 않는 일을 억지로 버티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2달의 쉼과 면접을 거치면서 예전에 TV에서 지나가듯 봤던 일본 시니어들의 모습이 이제는 미래의 저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남았습니다.

     

    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일할 수 있을? 그리고 그때는 생활과 건강을 지키면서 일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을까?

    아직 그 답을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번에 달라진 근무 형태를 선택하면서, 앞으로의 일은 나이에 맞춰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과 체력에 맞게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생각은 분명해짐을 느꼈습니다.

    참고 자료